인도

인도-스라바스티의 나날

뜰안에 달빛 2017. 5. 14. 12:35

인도편- 럭나우~ 곤다

(1997 년도 여행)

5월 9일

기원정사로 가는 길

 

럭나우로 가는 기차가 없어 깐뿌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럭나우까지 가야했다.

버스속에서 묵다 보니 밥은 커녕 바나나 몇 쪽과 귤 몇쪽으로 떼우고 있잖니 너무 피곤타.

럭나우역에 있는 reading room에 들어갔다. 외국인을 위한 대기실이다.

거기서 두 소녀와 어머니를 만났다. 

몸이 많이 지쳤는데 친절히 대해 주어 너무 고마웠다.

기차안에서 모녀

 

 

 

곤다 가는 기차표

 

 곤다가는 기차의 좌석에 내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

남자에게 내 좌석까지 부탁하며 떠나는

두 소녀에게 태국 1바트짜리 동전 하나씩을 주었다.

 소녀는 기뻐하며

나의 발삔것을 보더니 쉬면 된다고,.. 직업이 보조간호원였나...

기념사진도 찍고 주소도 받고... 얼굴도  마음도 예쁘다.

그러고 간 모녀가 인상이 아직도 남는다.

 

곤다-> 발람푸드-> 사헤트마헤트= 버스이용.

버스가  구부러진 데 내려준다. 지도로 봐서  기원정사가 한참거리이다.

툭툭이도 없고 할 수 없이 절음거리며 가는데 스리랑카스님이 서신다.

다 왔다 싶다. 다리때문에 며칠 쉴 예정이였다.

 

스리랑카 절 주지스님. 사리친견중...


기원정사 

스리랑카 사찰 건너편에 기원정사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21년간 설하신 장소다.

2rs의 입장료를 내고 스라바스티(기원정사)로 들어갔다.

수보리존자 . 라후라존자. 아난존자. 가섭존자등.....처소방이다 일러주신다.

부처님의 전용 야외 목욕탕도 있었다.



부처님 전용목욕탕



스님이라도 이 곳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들어갈 때마다 입장료를 내야한단다며

스리랑카스님은 공짜!~라나..


 다음날인가 이곳과 가까이 있는 강원 그런 학교가 있는데

강사스님이 한국에서 온 나를  보러 왔다.

스리랑카 절 처사를 시켜 수박 40rs 에 3통사서 그들에게 보내고 먹다.

 

그날 점심을 초대받어 갔다.

어리디 어린 스님들이 20명 정도 되였다.

밥에 과일?즙 넣었는지 녹색색깔을 띈 달랑 밥과 tea가 전부였다.

밥은 맛있었으나 영양이 부실하지 않을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

내 접시에는 수저가 놓여 있었다.

 

5월 10일

 다음날 속가 동생이 자전거를 갖이고 왔다.

날 태우고 그 스님은 따로 자전거를 타고


 

천불화현의 자리


간 곳은 앙굴마라 집과 00보살집. 천불화현한 곳이랑 구경시켜 주었다.

나보고 나이를 묻길래 내 세속나이를 말하니^. "엄마와 같은 나이네" 한다.

스님의 엄니같은 나이로 보이지 않았었나요?^^

5월 11일

돌지난 여자애 삭발하는 모습 


인도의 스리랑카 불제자는 아가가 첫생일이나 두번째 생일이면 

머리를 삭발하는 의식이 있단다.

이 의식을 치루는 소녀가 왔다.

한 스님이 머리를 몇가닥 짜르고 주지스님이 다 삭발시켰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 독경과 그리고 여자애 삭발의식을 치루는 광경을 목격

그래서 생각지 못한 행사를 만나게 돼 의미심장했다.

기원정사안에 있는 보리수앞에서...

이 보리수는 "부처님을 방문했다가 안 계시면 서운해 하는 신도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

했을때 "보리수를 나를 대신해서 보라 ".하셨다는 보리수란다.

그 아버지는 스님들에게 50rs 씩 준다.공양금이다.

그 곳에 참석해 있는 스님은 다 받는다. 

첫번째 공양은 보디가야의 저녘예불 때 50rs 받었고 이 번이 두번째 공양금이다.

 

스리랑카 스님


스리랑카 주지스님보고

" 언제 내가 가면 되느냐 하루에 얼마나 주면 되느냐" 하니까 

"no 문제가 안된다. 다리 다 나으면 가란다.

어느 사찰에 묵던지 기부금을 알어서 낸다.

 

스님이 옥상으로 올라가기에 따라 올라가 봤다. 이곳에서 주무신단다.

막힌데 없어 바람이 시원했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한국에서 본 북두칠성이 보인다.

캄캄한 검은 허공에 떠 있는 별들이 곧 쏟아질정도로 가깝고 밝었다.

손을 뻗혀 한 움큼 웅켜잡으면 잡힐 것 같은 선명히 눈앞에 있는 별들...

별들이 밝고 가까이 있어 내 눈에 떨어질것 같은  두려움마저 일었다.

우리나라 하늘 ..언제 저와같이 보고 말었든가..

"인도에서 북두칠성을 나는 보네.

언제나 한국에 갈꺼나 "읊조리니까

스님이 나보고 "you are a baby"~하신다.

스님과 2살 차인데 나보고 베이비래네. 그것도 "old baby!~"..

그래서 나는 young baby

스님은 old baby 하니까 웃으신다.ㅎㅎㅎㅎ

 

스리랑카스님은 소박도 하다.

질그릇이 금이 가고 한쪽이 떨어져 나간 그릇을 이용한다.

내가 보다 못해 다른 그릇은 없느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정리가 잘 된 방을 구경시켜준다.

찬장에 좋은 접시와 그릇이 정된 되여 있다.

내가 하는말

"저기 좋은 그릇이 있는데 왜 사용하지 않는가"

스님 왈

"물이 안 새니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한다.

그릇이 깨지면 그 때 바꾼다."

저 그릇은 귀한 스님이 오시면 사용한단다.

나는 한가지 배웠다.

우리나라는 그릇이 금이 가거나 한쪽이 떨어져 나가면 부부금슬이 나빠진다하여

교체하여 쓴다는 풍습을...

맞다. 물이 새지 않으면 쓰는 거다.

한국에 와서 그릇이 잘 못 되여도 그대로 쓰고 있다.

금 나갈 금슬도 없거니와 시주은혜로 사는 입장이 아닌가


5월 12일 

다리 때문에 며칠 있는 동안 응접실에 놓여진 일본 신문을 보여주신다.

일본에서 스라바스티를 촬영 차 나왔다가 일본신문에 기재된 신문을

여기로 보낸 것이다.

그냥 책상에 놓여진 일본의 신문을  불교 사대 성지를 순서대로

스크랩을 해 드리겠다하니

일본어를 아느냐 하시길래 조금 안다고 했더니 좋아라 하신다.

신문을 가지고 있으면 없어지고 찢어지기 쉽다.

주신 빈노트에 스크랩북을 만들어 드렸다.

이렇게 해야 보관이 오래 되지 않겠냐며...정리하는 나를 물끄럼이 보시던 스님.

정리를 하고 설명을 해 드렸더니 글쎄 나보고

i love you~

way are you love me?

i do not know...

ㅋㅋㅋㅋㅋ

발에 바르는 약도 주시고 엄마나 다름이 없다는 젊은 스님이 약을 주고

짜이에 물 설탕 그리고 생강을 넣어 만든 tea를 준다


기쁜 소식

 

 며칠이 흘렀다. 네팔 룸비니에 갈 희망과 방도가 없다.

다리는 낫질 않고 걸음 옮기기 조차도 자신이 없다.

초파일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하던 차에

죽은 란 법 없고 쏟아 날 구멍 있다더니

글쎄 이게 웬 일인가

뭄바이에서 오후에 인도스님이 신도를 대동 네팔성지 차 버스 한대가 온 것이다.

스리랑카주지스님이 나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고 난 그 버스를 이용해

네팔에 가게 되였다.

금상첨화. 고진감내.... 혼자서는 인도 카비라성을 다녀오기가 힘들다는데  버스가 없어 힘들다는

사람도 안 살고 교통도 없어 어렵다는 곳을 순례하고 네팔에 가게 되였으니 이 또한 불행 중 다행 아닌가.

 

오른쪽 스님이 인도 스님...

 

기념촬영을 하자고 하시여 응하고 낼이면 떠나야 하기에

사리친견하면서 기부금 500rs을 드렸다.

며칠간  잘 쉬였거니와 다행이 네팔을 수월히 가게 되였으니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5월 13일

0시진기재

am 10시에 출발했다. 카필라바스트을 참관하였는데 흔적만 남아있다.

숫도대왕 싣달타태자 fort 마야부인이 태몽을 갖인 자리에 수트파로 되여있다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빌라 바스트 궁전...다 허물어져 겨우 태몽을 꾼 자리에 수트파로 표시되여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개별적으로 찾아 온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버스도 없고 릭샤도 없고 아무튼  인도순례단 덕분으로 수월이 관람하였다.

소나울리와 네팔의 경계는 두 나라간의 사람은 자유로이 왕래한다.

외국인의 한에서만 비자를 받을 뿐...

내 시계는 밤 12시를 넘어 1시로 접어 든 시각에 차는 멈췄다.

 한 남자가 내가 카메라를 소지한 것만 체크하고는  별다른 기미없이

인도인의 성지 차량은 나를 태운 체 그냥 네팔로 가 버린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인도 출국 비자도장을 받었어야한다.

 인도스님은 나에 대해 무관하게 생각했고 나도 그런가보다 했었다.

 

이것이 첫번째 비자없이 인도 소나울리에서 네팔로 들어간 사건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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