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1997년). 5월7일
타지마할
여행하다보니 네팔 룸비니 까지 10일 정도 남었다
이왕 지사 룸비니에서 불탄을 맞이하는게 좋겠다 싶어
여행의 속도에 발동을 걸었다. 그 바람에 얼시구나~ 아그라성에 와서 그만 패단이 생겼다
아그라성에 입구에 배낭과 카메라 외 다 맏겨 놓고 들어가야하기에
카메라도 잊은 체 들어갔다
첫 방에 발을 들여 놓으니 여인들이 내 발을 가리키며 뭐라한다
난 이 방에 신발을 싣고 들어서는 곳이 아닌가하고 인도에서 산 센달을 벗었다.
손에 들고 다음 방으로 들어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빈 방인것을...왜 그랬지?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악...비명을 지르며 덜썩 자리에 주져 않았다
돌이 엇슥하게 놓인 자리를 디뎠던 것이다.
어찌나 아프던지 이제것 발을 삔중에서 젤 아펐다
통증과 어떻게 할 지 모르면서 아 앞으로 남은 여행은 어떻게 다니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날보고 왜냐고 자나가던 청년에게.. 다리를 절쳡다하는 시늉을 하니 내 발을 만져주는데 손을 휘저으며 멈추에 했다
참지 못할 정도로 어찌나 아프던지 어째든 들어왔으니 나가긴 해야것고 절룩거리며 간신히 도는데 아차 그때사
입구에 놓고 온 카메라가 생각이 났다.
아그라성에서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 지붕을 손으로 잡은 포즈가 멋있지만
쳐다보는 사진사가 나보고 5달러에 찍어준다는데
;사양하고 겨우 돌아 입구에 왔다.
그나마 아그라성 입구를 찍을 수 있었다.
아그라성
타즈마할
타지마할 구경. 진짜 묘는 지하에 있어 볼 수가 없다
말은 일년에 한번 보여준단는 말도 있다
정말 대리석으로 장식같은 것이나 문양을 으리으리하게 꾸몄다
정성이 많이 들어 보였다
사랑하는 아내가 6번째 아기를 낳다가 죽었는데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셰계에서 하나 뿐인 묘를 만들었다.
아그라성에서 바라다 보는 곳에서 바라다 볼 수 있는 장소에 아내 이름을 따서 타즈마할을 만들었다.한다
타지마할
이 타지마할을 각곳에서 솜씨가 젤 좋은 사람만 5000명을 뽑아서 만들었는데
다 완성이 되니까 인부들의 팔하나를 짤렀다는 후문을 듣는다
그렇치 않으면 똑같은 건물이 나올 것을 염려해서 그랬다나
묘가 관광이 되였지만 지구에서 하나만 있기 위해 인부들의 팔을 짤렀다 는 것
그것도 오른쪽팔을... 아내 사랑이 도에 지나친 것 아닌가
아름다우니까 남의 묘를 구경하는 셈이다
아우랑가바드
아우랑가봐드성은 타지마할을 보고 만들었다는데
타지마할 지은경비에 1/3 비용으로 지었단다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아우랑가바드 성
기차가 럭나우로 가는 것이 없어 깐뿌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럭나우까지 갔다.
가는 동안 버스속에서 묵다. 밥은 커녕 바나나 몇쪽과 귤 몇쪽으로 때우고 있잖니
너무 피곤하다
럭나우 기타역에 가서 레팅룸이라고 역에 외국인을 위해 마련한 방이 있어 갔다
곤다로 가서 발람푸드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사헤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돌아가는 지점에서 내려주는데 기원정사가기 까지는 조금 걸어야 한다.
언제 인도에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원정사를 들려야 하기에 절룩거리면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스리랑카 스님이 마침 절앞에 계신다. 스리랑카 건너편에 기원정사가 있다.
스님에게 사정얘기를 하고 절에서 좀 쉬겠다 허락을 받고
안내한 기원정사에 들어갔다.
입장료는 2루피다.
스님은 근뱡에 산다고 무료란다.
대충 가이드북에 의존해서 참배하였다.
차아나사찰에 있는 젊은 스님이 오셔서 내일 알굴라마라 하우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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