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보팔의 싼치(Sanchi
)
꽤 오랜 전에 다녀왔던 곳이고 참배위주로 다녀서 제대로된 사진이 별반 없어 유감이다. 있는 것도 질감이 좋지 않고...그나마 갔다 온 흔적을 올리니 ....이해하시길
싼치는 아쇼카 대왕이 bc2-3세기경 세운 탑이 남아 있는 불교 유적지이다.
싼치는 1818년 한 영국인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싼치는 1912-1919년 간에 영국의 존 마살경이 이끄는 팀에 의해서 정리.복원되여 오늘에 있게 되였다.

산치 입구

산치에 설화
아쇼카왕이 전인도를 통일할 무럽부터이다.
옛날 옛적 전 인도를 제패한 전륜성왕 아쇼카왕이 있었는데 그는 집안의무능을 무용으로 통일시키고
이웃나라들을 점령한 뒤 남인도 징벌에 나섰다.
길을 가다가 한 단정한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것을 보고 전쟁 중 외로움을 느낀 대왕은
호기심으로 그 여인을 불러들여 하룻밤을 잤다 .
그 증표로 거울 반쪽과 팔찌 하나를 주었다.
그 후 장군은 까마득히 잊었는데 여인은 아이를 낳게 되었다.
가족들은 주인없는 아이를 낳으면 장차 문제가 될 뿐아니라 더욱이
군인출신 황제의 아들을 낳았다간 어떤 변이 닥칠지 모른다하여 집을 나가라 하였다.
할 수 없이 거지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아이가 출생하였다.
성장하고 보니 아이는 그 아버지를 닮아 너무도 용맹했다.
밖을 나가면 동네 아이들을 두들겨 눕혀 움짝달짝 못하게 하니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비도 없는 지식이 힘은 세가지고...."하자 아이는 어머니를 졸랐다.
"나의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왜 나는 아버지 없습니까 ?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팔찌와거울 반쪽을 내 주며
"네 아버지가 지금은 카시미르에서 휴양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 보거라 "
아이는 8개월 동안 갖은 고초를 겪으며 아버지가 있는 카시미르로 갔다.
궁리끝에 어려운과정을 겪어서 황국의 정원사가 되였다.
3년 동안 지나고사 우연한 기회에 임금님을 만날 수 있었다.
임금님은 그 아이를 만나 묻기를 "어머니가 어디 계시냐? " 산치에 계십니다."
그러면서 거울과 팔찌를 내 보이니 아쇼카임금은 놀래며 "어머니를 뵈러 어서가자 " 며 흰코끼리에 아이를 태우고 갔다.
그러나 아이의 어미니는 매일 북쪽 언덕에 올라가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그만 죽어 뼈만 앙상히 남아 있었다.
임금은 통곡하며 그간 못다한 사랑을 참회한 뒤 그의 영혼을 위해 부처님의 사리를 가져와 탑을 형성하고
그의 묘지를 만드니 이것이 저 유명한 산치의 대탑이다.(인도성지순례기에서.)
산티의 탑은 동서남북 토라나가 있다.
싼치는 불교 유적지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4월 1일에 찾은 산치는 매우 조용하고 한가한 마을이였다.
산치에 군인아저씨가 친절하게도 뭐 도울일 없냐면서 짜이까지 준다.
산치를 구경하고 산치근방에 갔는데 노인들과 얘들이 무슨 탑을 조성 하려는지 돌을 다듬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아래서... 사탕이 있어 주니까 반절씩 쪼개여
어찌 달게 먹는지 별것도 아닌데 맛있게 먹으니 사탕없던 시절이 생각난다.
나마스테()~하면 반가운지 나마스테!
하는 잔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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