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편(1997년 배낭여행)
태국->켈거타 ->보드가야 1997 년 3월 9일
드디어 인도에 발을 들여놓다
1997년 3월9일
방콕에서 8일날 출발->인도 캘거타 9일 도착
방콕 8일 5시20분 발 드디어 인도 켈거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환전하고 일본인 3명과 택시합승(100rs) capital tarvels /싱글 200rs/106호/묵다.
그 근방에 있는 음식점에서 볶은 밥과 카카오쥬스(32rs)로 저녘을 마치고 좀 걷다
뚝뚝이로 숙소로 오다가 방콕에서 만난 임헌갑이 일러준
centerpoint guest house 가1dy (65rs) 머물다.
처음 아가씨하고 방콕에 묵었던ch2 는 이보다 양반일세. 어설퍼 대충닦고 잠을 성할 수 밖에.
이로서 인도의 여정이 시작되였다.
1997년 3월 10일
일본인 대학생 3명은 도미토리방을 이용했다.
9시 넘도록 기척이 없다.
관광 왔는지...잠자러 왔는지.....
일본인 중 대학생4학년인데 1주일간 여행리포트를 제출한다고.
약간 일본어와 한자를 알어 의사소통이 좀 되였던 학생이 있다.
다행이 일본어는 어순이 울나라와 같아 한자나 영어를 잠뽕으로 문장을 엮어도
두나라 의사소통엔 희안하게 별 큰 문제없다.
영어가 안 통하면 한자를 쓰고 간혹 일본어를 구사하면 통한다.... 이래서
인도 어디든 일본인을 만나면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별반없어 좋았다.
환율하고( $100=3505rs)..난중에 세어보니 100rs가 차이난다.
23세인 마에다와 여행사에서 인도지도를 구하고 낼 7시에 여행관광을 하기로 예약(75rs)했다.
타고르 house구경하고 모스크사원을 찾었다.
메에다는 복장때문에 입장을 못하였다.
인도네시아 매단에서 한국아가씨와 무슬림사원을 간일이 있는데
아가씨는 복장때문에 못 들어간 일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불량?복장은 입장을 꺼려한다.
팔과 다리가 보이면 뭐가 어떤지....
걷다보면 길가에 일회용 짜이컵이 수북히 쌓여있다.
흙으로 빚은 일회용으로 한잔에 짜이 1rs(1997년)로 먹을 수 있다.
한번쓰고 버리기엔 수공이 아깝다.오히려 위생적이긴 해도..
얼마큼 갖이고 다니다 짐되고 깨지고 해 결국 버리게 되였지만.
난 맛이 좋아 사먹는데 마에다는 사양한다.
난 아무거나 잘 먹었다.
그것이 탈이 되긴했다...(이질로 고생 좀 했다)
캘거타. 크리슈나텝풀????
켈거타 시청
1997년 3월 11일
여행사에 부탁한 관광을 하였다.
-.nicco park(흰 호랑이가 있다)
-.자인템플
-.doakshineswer 템플
-박물관
-zoo garden
victoria memorial hall
-.belar math
내가 인도에서 첫 머물던 잠자리 capital travels
이층침대 아래는 잉글랜드 남자친구
그 옅에는 이스라엘 남자친구
건너편엔 한국머스마....
이곳이 배낭족의 잠자리 풍습
고급스런 관광객들의 여행과는 엄청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절대로 남에게 피해주고 하는 것은 배낭족의 에치켓이 아니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서로 주지 않는다.
인도여행을 마치고 방콕에 왔을 때 방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싼 도미토리가 있어 들어갔다.
하루 자면 방이 나오니까 옮기면 되거등...
어찌나 피곤했던지 달러지갑이 옷 밖으로 떨어진줄도 모르고 잤다..
일어나 보니 내 옆구리 옅에 지갑이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배낭족들의 프라이버시다.
배낭족이라는 점 하나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만나면 친구라 부를 뿐...
캘거타 관광티켓
1997년 3월 12일
낼은 보드가야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약하였다.
마에다는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표를 끊고...
돌아오는 길에 깔리사원을 구경했다.
남아 있는 사진을 올렸으나 건물 이름도 잘 모르겠다.
다행히 켈거타에 묵으면서 마에다가 동행이 되줘 수월했고
난 가이드북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웬만하면 짧은 거리는 도보로 이용했다.
거리는 혼잡했다.
그들은 그것이 질서정연한 생활로서 자가용(별로 없음)과 마차 그리고
인력거...부딪히지 않고 요리조리 잘도 다닌다.
거리에 신호등이 없어도 자연스럽다.
길가에 어린여자가 옆구리에 애기를 매달고 손벌리는 여자 아이.
나이 어린 남자애.....졸졸따라 다니며
투 루피기 부미-two rs give me 하며 끈질기게 손을 벌리며 쫒아온다.
캘거타 시내에서
길가에 있는 수도꼭지에 (공동수도)좀 씻으면 좀 좋아.
난 그들에게 혼났다.왜냐고요?
씻으라 했다가요.yuo go~소릴 듣고야 말었어요.
똑같은 사람으로 그들은 어찌 저리 살아가는지
그 때 만해도 인도 카스트제도를 실감하질 못한터라 그 들의 생활습관에 가슴이 아펐다.
길에는 힘겹게 싸이클인력거 끄는 초라한 모습인 거프스런 말른 남자.
위에 탄 부티난 거만하고 당당한 여인과 아이
넘 대조적이여 웬지 씁슬했다.왜일가!
싸이클인력거 처음 탔을 때 미안해 했었다.
그것도 그들에 직업이며 그나마 타지 않으면
생계에 위협받는다는 것을 익히지 까지 여러 날 지내야했다.
항상 옆구리에 애기를 끼고 돈을 요구하는 늙은여자.아이들.길가 아무대고 눕는 애기엄마.노인네 남자들..
불쌍하다는 생각 뿐 인간의 이리천차만별의 삶. 도울 수 조차 없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에 몬내 기분이 착찹했다.
처음에 요구하는 손에 5루피인가 줬다. 주는 걸 보고 우~달려드는 얘들을 감당을 못해 돌아서야 했다.
마음같아서 다 나눠주고 싶었다.허나 끝이 없다.해결이 안된다.
마에다가 그만 가자고 이끈다.
보드가야(bodhgaya)
1997년 3월 13일
보드가야로 가는 기차.오후 8시 30분 발
마에다와 저녁을 마지막으로 같이 했다.
덕분에 쉽게 인도생활을 접하게 됐고 마지막이라서 저녁을 내가 샀다.
출발부터 여행이 순조로워 겁없이 인도와 네팔 스리랑카를 배낭여행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처음부터 여행이 잘 되면 마지막까지 잘 마치고
처음부터 꼬이면 마지막까지도 여행이 꼬인다...
지금생각하면 뭣도 모른 체 인도에 들어와 힘 안들이고 여행하게 된 것도
마에다덕으로 순조로워 혼자서 잘 했는가 싶다.
그는 5일간 같이 다니면서 매우 행복하고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일본말 조금 더 배워 일본으로 통화하면 설사 저의 부모가 받드라도 그냥 전화를 끊지 않는다면서
welcome! 한다.
헌데 나라 차이랄가. 울나라민족은 확실히 인정이 많다.
남이 하나 주면 나도 주고...
기차속에서 먹는다고 지 먹을 과자만 사고(저녁내가샀잖나) 2루피의 잔 돈이 남으니까
짜이를 사서 프레젠트라 건넨다.
어제 아카테미 전시관 갔을 때 혼자서 자이티를 먹는 걸 보니 ^
(지금생각하면 배낭여행족들은 각각 본인 건 본인이 ..남들 것 까지 신경쓰며 다니는 것이 아님..)
철저한 여행객이였든가 싶다.
어째튼 헤어지니까 섭섭하긴 하다.
그도 헤어지기 섭섭했나 그가 쓰던 스포츠모자를 준다.
나에게 맞는 모자는 아니였지만 내 배낭고리에 매달아 주며
그는 바라나시로 ~나는 보드가야로~작별인사하고 각각 다른 기차문으로 올라탔다.
내 좌석에 올라타자마자 그 모자가 없어짐을 알었다.
참 빠르다. 금새 낚아채 가다니...
1997년 3월 14일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보드가야는 붓다가야라고도 불리는 도시로 불교의 4대성지중
<룸비니(성탄). 붓다가야(성도) .사르나트(설법). 쿠시나가르(입멸) >하나다.
붓타가 보리수아래에서 명상에 잠겨 6년만에 깨달음을 얻은 성지로서 유명한 곳이다.
불자라면 성지순례에 꼭 참배하는 장소다.
보드가야 대탑
릭샤(45rs)를 타고 보드가야에서 좀 떨어진 고려사에 도착하니 한국주지스님은 안계시고 현지인들이 반길 뿐이다.
근처에 사랑방이라는 곳에서 숙박(50rs)/ 밥.된장.찌게(1인 30rs)<1997년>로 해결..
저녁에 보드가야로 돌아오는데 음식점에서 만난 두 비구니스님이 낼 수자타여인이
붓타께 죽공양을 올린 장소와 전정각산에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티벳사원(1일 25rs)에서 묵었다.
전정각산
1997년 3월 15일
낼 전정각산을 같이 동행하자는 제의에 수락했던 비구니와 현지인 [기소리]의 안내로
전정각산을 향하여 도보로 걸어갔다.
전정각산 가는 중 들녘
들녘에 죽공양올리는 수자타여인의 누각
가는 도중 수자타여인이 부처님께 죽 공양을 올린 누각이 나온다.
전정각산은 말 그대로 붓타가 정각을 이루기 전에 6년간 수행한 굴이다.
혼자가기엔 외따이 있는데다 저급계층에 마을이 있기 때문에 사고소식이 많이 생기는 장소란다.
뒤늦게 알었지만 한 스님도 혼자가다 뒤에서 기역자모양한 낫을 들이대 다행스레 목숨만 건졌단 후문과
일본여자애가 혼자가다가 죽임을 당했단 얘기..
그리고 한국관광버스로 가던 사람들도 뱅기표와 여권외는 다 털렸다는
소문을 듣었다. 겁없이 다녀왔다고 퉁먹은 일이 있던 장소다.
(긍게^^ 몰랐응게 갔다왔지~)
전정각산 가는 들녘 모습
사진올리기 싫은데 또렷이 안나와 올려봤다.
뒷산이 내 몸에 가릴까봐 까우퉁!ㅋㅋ
나 역시 소식을 안 듣고 가는거라서 한참을 도보로 걸었지만 더위만이 문제였을 뿐 기분은 좋았다.
한 마을이 도착 아이들이 몇명이 우리쪽으로 닥어왔다.
별 문제없이 지났다.
더워서 벗어버린 양발이 큰 주머니에서 안 보였다.
몇푼 안되는 양발이 그들에겐 소용이 있었는지....없어진 걸 거의 전정각산에 와서야 알었다.
전정각산은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단지 좁은 공간이였고 정각을 이루기 전 수행한 곳이다.
네팔.?티벳?승려가 대신해 있었다.
글로만 통해 들은 성인의 현지에 와 보니 겨우 비바람방패막인 ... 협소한 동굴..
먼 아늑한 세월처럼 느꼈던 .생각으로만 상상했던 곳을 잠시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와 읹아 보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뭔지 신묘하다.
성인의 자취는 없으나 성스런 흔적을 참배하다니.....
그런데 웬지 마음은 쓸쓸했다.
2500여년전 이곳에서 수행하시던 곳...6년간 좌정한 자리....
풀을 베어 방석을 만들어 명상한 자리 ..길상초
그곳에서 탁발할 거리는 멀어보였다.
더구나 오면서 보니 저계급층의 촌락이라 넉넉한 살림이 아니였을 터.
굳은 결심으로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명상을 하신 ..붓다.
하루에 겨자씨하나로 연명하셨던 붓다.
잠시 기분에 젖었다.
내려가는 도중 우리일행은
한국스님이 운영한다는 학교가 있다고해서 갔다.
참 훌륭한 일을 하시는 비구스님이구나.. 더욱 한국의 스님이라니... 하필 한국에 가셨단다.
수자타학교라한다.(법륜스님이 세운학교다)
무료로 얘들을 교육하고 있다 들었다.
나도 기회만 되면 봉사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봤다.
감동이 온다. 조금 기부 했다.
수자타학교
법륜스님이 세운 학교다
보드가야 공양과 예불
돌아온 티벳절에서 묵고 있는 비구니가 저녁예불에 참석하자고 한다.
테벳스님들이1시간동안 경을 읽는다
보드가야 법당에서 경을 읽는 것이 예불인데 저녁예불만 한단다.
아침은 자유라나...
안으로 돌어가 앉아 있는 동안 우리와 예불이 달라
좌선만 하고 있자니 경 읽는 소리가 끝히더니
어느 분이 법당에 참석한 스님들에게 모두 봉투 하나씩 준다.
그 분이 오늘 공양자인가 보다.
공양금으로 50rs가 들어있었다. 아는 비구니가 4개월채 있는데
그 돈으로 포도와 귤을 공양하자고 한다.
포도는 1kg 25rs 귤 1kg15rs 였다.
공양....붓다와 제자를 초청해서 음식공양을 대접하고
그에 법문을 들려주시는 게 붓다의 공양법이다. 불공...
태국에서 공양자에게 시주자가 여법히 공양하는 의식을
처음 태국갔을 때 본 적이 있다.
어른 스님 입회하에 공양하는 의식이였다.
시종일관 호기심어리게 보았다.
(태국편에서 자세히 언급할지 모르겠다)
보드가야에서 예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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