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上善]은 없다 / 남장
‘국화 옆에서’로 유명한 미당 서정주 선생은 젊은 시절 짝사랑 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인은 미당 선생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로 가고 말았다. 미당 선생의 상심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미당 선생에게 그 여인은 당시 삶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미당 선생의 부인이 된 인연은 선생의 선친께서 직접 선을
보고 오셔서 맺어 주신 분이다. 그러다 보니 선생은 원래 짝사랑했던
상선보다는 아버님께서 점지해 주신 차선[次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선생을 버리고 갔던 그 여인은 그 후로도
남자를 둘씩이나 바꾸었다가 공산당을 따라 월북했다는 후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선생은 만약에 그 여인과 맺어졌더라면 아마 자신의
그와 같이 했을 거라는 생각에 퍽이나 다행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지 꼭 그것만 고집하지 말고,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에 부딪힐 때마다 고민하고 좌절을 거듭
한다. 이것만 보면 오직 이것만 생각할 뿐 저것과 그것도 있다는 사실
을 간과하기 싶다. 어디에도 꼭 ‘이것만’이라는 최상선[最上善]은 없다.
이 세상에는 이것과 저것 그리고 그것이 있다.
우리나라가 IMF체제로 들어섰을 때, 국내 대그룹의 부회장까지 지낸
한 인사가 회사의 부도로 실직자가 된 후 호텔의 웨이터로 취직해 세간
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럴 경우, ‘대그룹 부회장까지 지낸 내가 어찌
하찮은 웨이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체면이 있지, 굶어 죽더라도 그것
만큼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은 과감히 ‘이것뿐이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것일 수도, 혹은
저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웨이터 직에 투신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사랑과 존경을 받는 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마땅히 그 마음을 쓰되 한 곳에 집착하는 바 없이 쓰라’는 말씀이다.
‘과거에 내가 누구였는데 …’라는 생각에만 매어 있으면 올바른 현실인식도
하지 못한채 파멸의 구덩이만 커갈 뿐이다.
옛 고인의 말씀에도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길이 끊어진 줄 알았더니
별유동천[別有洞天]이 있더라’고 했듯이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버릴 때 저것과 그것의 또 다른 세계가 삶의 보람과 성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요즈음 우리 젊은 세대들은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며 인생을
멀리 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현실의 ‘이것’만이 전부인 양하는 경향이
팽배하고 있다. 이러한 조급증과 편협한 처신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급주의와 한쪽으로만 치우친
극단적 생각들을 하루빨리 버려야겠다.
좀 더 느긋하고 멀리 보는 안목으로 ‘마땅히 그 마음을 쓰되, 한쪽에
머무는 바 없이’ 인연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간다면 실패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이것만이 아니라 저것과 그것도 있다’는 명답이 들어 있다.
*저자 : 남장[南將], * 책 제목 : 4人4色 길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