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네팔- 제2 가비라성 자리
네팔 1997년
인도 가비라성은 싣달타대자를 잉태했던 자리에 큰 언덕으로 기록되여 있었고
비록 기비라성은 다 무너져 자취가 없어졌지만 무너진 창고며 성터가 괘 커보였다
네팔에 전쟁으로 이주 온 이후로 동서남북의 문 자리는 있었으나
크기로 보나 부자집의 성향이 엿보였을 뿐이었다
인도에서는 인도가 원조라고 가비라국이라 주장하고 네팔이 자기네라고 주장했다하나
규모로 봐선 인도가 맞는 것 같았다.
네팔로 피난 와 있었기에 인도에 비해 협소한 것은 사실이다
강대국의 주장앞에 물러설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일 수 밖에 없다.
정반왕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곳에서 묘지가 있다하여
여자에 6세소녀와 땀을 흘려가며 찾아 갔었다
웬지 먼 발치에서 보이는 그 능을 본 순간 발은 한참동안 멈추었다
아무 생각없이 물끄럼히 쳐다봐졌다
한때의 부귀영화가 자취마저 흔적조차 찾을 수도 없고
남겨진 것이라곤 조금은 허물어져 있는 저 능이
왕의 일생을 대변한것이란 말인가!
세월의 영화가 한갓 저의 표시가 전부인가...
보수도 해주는 이도 없는지...조금은 안타까웠다.
그 때 본 벽돌로 된 능(수두파)을 배경으로 소녀 바리바바띠
에게 맞춰진 카메라샤터를 누르라 하고 숙연히 찍혔다.
( 이 사진은 우연히 어느 스님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랬다.
6세때 본 여자애 모습이 적나라 들어났기 때문이다.
근데 그 여자애가 이렇게 10년이 지난 16세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비록 사진으로나마 다시 보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고 성장한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지금은 성인이 되여 결혼도 했을터고 아이엄마가 되였을 바리바바띠!
지금도 안내하고 있을까?)
마야부인은 태자를 탄생하시고 1주일 후 돌아가셨기에 능은 있을 수 있다.
제2 어머니 역할을 하신 이모 마하파자파티는 비구니가 되시여 화장을 하였을 것이므로
정반왕의 옅에 있는 능은 아닐 것이라 사료된다.
어찌하든 참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건 나로선 매우 희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