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네팔-이런 소녀라면...
네팔편 - 룸비니
(1997년 배낭여행)
끈기있는 6세의 소녀
아그라에서 발이 염좌되여 겨우 진통을 진정시키고 럭나우 그리고 스라바스티를 쉬며 머물며 가까스로
거쳐
내가 예상한대로 댜행히 10일 만에 당도한 곳....네팔!~
지금 생각으로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들의 고향 같은 곳.
그것은 천년 만년이 지나도 흡사 똑같은 감정이였으리라............................느낌이 든다.
수천개 만개 꼬막등불은 4월8일 전야제의 불빛이였다.
우선 내가 이 장에서 쓰고자 하는 얘기를 시작하련다.
발이 삔 상태에서 17일을 대성석가사에서 머물었다.
한달 30일비자를 반절은 발로 인해 룸비니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주지스님께서 일하는 애 하나 딸려 네팔에서 주장하는 카비라국(싣달다태자의 궁궐)의 장소를 찾았다.
갔을 때는 조용한 시골 농촌이나 다름없이 조용했다.
한가로운 오후였다.
나를 본 얘들이 갑자기 열댓명이 나타나
날 애워싸고 있는 아이들이 루피를 달래는데 루피는 주지 않고 한 소년에게 음료수를 사오라 하여
친구와 두명에 한 병씩 마시게 했다.
지폐를 준다면 얘들은 또 다른 관광객에게 돈 받기를 원하게 될 것이므로....
다른 성지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에 비해 여긴 교통도 그리 좋지 않아 관광객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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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카필라성
나와 대동한 석가사에서 일하는 20살 먹은 청년(이름이 두글짠데...)이 안내한 곳.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비라성은 여기에 비해 범위가 좀 컸으며
싣달타태자를 잉태한 태몽을 꾸었던 자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
네팔보다 신빙성이 있어 보이나 여기의 카비라성은 인도에 비해 좁지만
인도에서 볼 수 없는 동 서 남 북의 문이 남아 있는 흔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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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얇은 소견으론 어디가 진짜 카비라성인지 결정하기가 좀 난해했다.
인도가 네팔보다 강세?가 높아서 인도에서 주장하는 대로 카필라성이 원조라 여긴다고 들었다
이곳은 많이 협소하여 좀 의아하긴 했다.
지금생각으로 두 나라 다 맞을 것 같다
.조그만한 카비라국이라도 인도에서 네팔의 곳까지 카비라국의 영역이 아니였을 가 하는 생각
전쟁을 겪으면서 이리로 피난 오지 않했을가...
석가사에서 준 메모지를 보면 이곳에 부처님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의 스투파(울나라 말로 묘지)가
혹 싣달타태자의 이모인 마하파자파제의 묘일지...
지금 생각하니 마야부인이다.
왜냐면 이모인 마하파자파제는 비구니이기 때문에
아마도 화장했을것이다.)
1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
걸어가기엔 내 발로는 무리였으나 이곳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당도하니 얘들이 한 떼가 닥아온다.
물론 요구하는 것은 뻔한지라 난 얘들의 근기를 실험하기 위해 제안을 했다.....
너희들이 요구하는대로 내 요구를 들어주면 루피를 주겠다.
내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너희들은 관세음보살 하고 부른다면 말이다.
먼저 나무아니타불하니 관세음보살!~한다.
여기서 루피를 준다는 제안을 걸고 목적지로 떠났다.
그리고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 갔다.
몇 미터쯤은 열댓명의 아이들이 따라왔다.
일찍암치 포기하는 몇명의 아이들도 생기고
대여섯명은 중간쯤까지 따라 왔다가
그 들 중 또 몇명이 포기하고 돌아갔다.
두 세명이 남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니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얼마를 그러하고 갔다.
다 떨어지고 딱 한명이 끝까지 따라온다.지극이 감탄이 나온다.
내도 걷기에 먼 길을 온 것 같은데 (1km) 넘을가...?
'음?~ 제법인데..?'
나이를 물었다.
소녀의 나이는 6살이란다.
이 소녀의 근기를 시험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염불하며 더 한참을 걸었다.
드디어 먼 곳에 스투파의 모습이 보인다.
열심히 걸었다.
"날씨가 많이 덥지?"
...그래도 끝까지 관세음보살!하고 따라오는 소녀....
어느새 당도한 곳
붓타의 부모님의 스투파....정반왕과 마야부인....
벽돌로 쌓은 동그런 모양
커다란 능처럼 ... 나란히 있었다.
조금은 보수가 필요했다.
세월이 무상하리만치 그 때의 부귀영화는 뭣이던가
자세한 기록이 보관되였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으론
표지판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진을 찍었든 것 같은데 있을는지..있다..필림이 있다..
네팔편이 아니라서 지금 확인하지 못한다.
물끄럼이 한참동안 바라 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기다리는 소녀에게
"다시 되돌아 가야하니까 돌아가서 루피를 주마..."
고개를 끄덕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그냥 걸으면 다리가 아프니 (다리를 가르치며 아야아야~~)염불을 하며 걷자. "
"다리가 덜 아프다."
소녀가 웃었어...^^
뜨거운 태양은 얼마나 내리 쏟아지는지...
소녀는 적응이 되였겠지만...
소녀는 끄떡이 없다.
많이 걸었더니 다리는 피곤하고 모자를 썼어도 얼굴엔 땀이 흐리고
아그라의사에게 얻은 붕대로 염좌 된 발을 잡았지만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
네팔에서 말하는 카비라성끝까지 염불하고 갔다 온 6세소녀와...
되돌아 왔다.
잔디에 덜썩 주저 앉았다.
붕대를 풀은 다리가 퉁퉁부어 있었다.
발에 미안했다. 써늘한 바람이 다리를 좀 안정시킬 뿐
옅에 앉아 내 다리를 보던 소녀의 얼굴에 놀란빛이 보인다.
난 옅에 앉은 소녀의 근기에 감탄했고..
끝가지 남은 아이,
거기다 후창하 듯 염불를 따라 한 아이의 인내.....
(네가 부르는 소릴 니 귀로 들어봐라..라고 일러준것도 같고.....)
그래서 그간 기다린 석가사 청년에게 사진 한장 부탁했다.
그냥 루피만 주고 헤어지기 섭섭한 아이...
기념 촬영을 하는 듯 하며 약속한 대로 제일 빳빳한 루피를 주었다.
못 간 아이들이 우리 쪽을 보기전에
"다른 아이들이 보기전에 얼른 넣어 ."
호주머니를 가리키니 얼른 넣는다.
아 !~ 나하고 찍은 사진 올리면 내 신상이 탄로나는 거다..
음~안되겠따...킹
난중에 올릴 기회가 됨 그때나 올려야겠넹 ^.* 지송;;
허기사 우따이쁘르 공원에서 올려뿌렸지~잉!~에구그그
지금은 내 얼굴을 많이 공개한다.ㅋ
경제사정이 안 좋은 나라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몇 푼 안 되는 루피로 생활전선에 섞어 사는 아이들...
인도인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중에 자존심을 저버리지 않고 사는
똑똑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데.
인간에 高下가 없거니 계급을 누가 만들었기에...
천차만별로 사는 인간세계라지만..
마음 한 구석에 그늘이 진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끝마무리 못한 글을 읽고 왔다 가실 블로그님..
감사합니다.
사진이 날아가 글만 남깁니다.
늘 평안한 생활 . 행복한 마음 꽉! 부여잡고 사시옵서서. 빌어봅니다.
네팔을 쓸 순서가 아닌데 생각이 나 일부분 써 본다.